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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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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에 비해 1944년 무렵, 여성노동자는 1200만명에서 2000만명으로 증가했습니다. 동 시기 미혼 남성 군수공장 노동자 수는 170만인데 비해 미혼 여성 노동자 수는 400만에 달했습니다. 여성의 사회 진출과 더불어 수많은 생명을 앗아갔던 세계대전의 무서움이 다시 한번 느껴지는 수치입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다음엔 어떻게 될까요? 모든 여성이 가정주부로 돌아가야 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수많은 '로지'는 사무직 노동자로 업역을 바꾸고, 소득이 있고 목소리를 내는 이들은 모여서 목소리를 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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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말 광주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인구학적 측면에서 타 지역보다 농민 여성의 비중이 높았고, 제조업의 규모가 적었지만 광주에는 열정적인 학생인구와, 이들이 집중된 대규모 사업장이 있었습니다. 일신방직, 전남방직, 호남전기(이후 로케트건전지로 사명 변경), 전남제사, 남해어망 등이었죠. 당시 섬유업계 산별노조에는 17개 단위노조 가운데 12개 사업체에 소그룹이 결성, 대부분이 여성 중심 사업장이었습니다. 당시 식량 생산 주체였던 전남지역 여성농민들이 저곡가나 과중노동 등에 치였음에도 사회로 나오기 힘들어했던것과 반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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